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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회와 영화의 교차점 (영화 어느 가족-빈곤, 범죄, 고레에다 감독의 시선)

by 나날이에요 2025. 6. 11.

‘어느 가족’은 일본의 대표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2018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작품입니다. 영화는 빈곤, 범죄, 가족 해체, 복지의 사각지대 등 일본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가족 이야기 속에 녹여냈습니다. 이 글에서는 영화의 줄거리부터 사회적 의미, 감독의 연출까지 입체적으로 분석하면서 고레에다가 전하는 메시지를 살펴봅니다.

어느 가족 포스터

줄거리 요약: 진짜 가족이란 무엇인가

영화 ‘어느 가족’은 도쿄의 빈민가에 사는 오사무, 노부요, 아키, 시타, 그리고 할머니 하츠에까지 혈연관계가 아닌 사람들이 하나의 가족처럼 살아가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겉보기엔 평범한 가족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실제로는 생계를 위해 도둑질을 하며 살아가는 ‘비공식 가족’입니다.

어느 날, 오사무와 시타는 겨울밤 추위에 떨고 있는 한 어린 소녀 ‘유리’를 발견하게 되고 그녀를 집으로 데려옵니다. 유리는 부모에게 학대받고 있었고 이 가족은 유리를 정식으로 입양하지 않은 채 함께 살아가며 점점 정을 나눕니다. 소녀는 새 가족 속에서 진짜 웃음을 되찾고 가족 역시 유리를 보호하려 애씁니다.

하지만 평온한 일상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유리의 실종이 뉴스에 보도되면서 이 가족에게 경찰 수사가 시작되고 그 과정에서 각 인물의 비밀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할머니의 연금 착취, 법적 가족이 아님에도 위장 가족처럼 살았던 사실과 유리의 유괴 등 복잡한 진실이 밝혀지며 이야기는 전환점을 맞습니다.

결국 유리가 법적 친부모에게 돌아가면서 가족은 해체되지만 관객은 끝까지 ‘과연 무엇이 진짜 가족인가’라는 질문을 품게 됩니다. 혈연이 가족을 만드는가, 아니면 함께 살아온 시간과 마음이 가족을 만드는가? 고레에다는 이 작품을 통해 그 질문을 조용히 던집니다.

일본 사회가 감추고 있는 빈곤의 민낯

‘어느 가족’은 일본 사회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빈곤과 복지의 사각지대를 사실적으로 담아낸 작품입니다. 일본은 겉으로는 안정된 복지국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비정규직, 저소득층, 독거노인, 아동 빈곤 등 심각한 사회 문제가 존재합니다. 고레에다는 이 영화에서 바로 그런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삶을 보여줍니다.

작품에 나오는 가족은 모두 비정규직 혹은 무직이고 정부의 지원이나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한 채 각자의 방식으로 생존하고 있습니다. 오사무는 일용직 노동자이고 노부요는 세탁소에서 해고된 후 소일거리로 돈을 벌고 아키는 성인 업소에서 일합니다. 이들은 정식 등록조차 되지 않은 ‘그림자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면서 도둑질과 사기라는 생존 방식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특히 고레에다는 일본의 가족 중심 제도와 그 배타성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복지 혜택은 ‘법적으로 등록된 가족’에게만 주어지고 그 외의 공동체는 제도 밖의 존재가 됩니다. 이 가족처럼 혈연이 아니더라도 정과 책임을 나누는 관계는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며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합니다.

또한 영화는 ‘유리’라는 소녀를 통해 아동 학대 문제도 끄집어 냅니다. 친부모에게 학대당했던 유리는 정부의 무관심 속에서 방치되지만 비공식 가족은 그녀를 진심으로 아끼고 보호합니다. 이것은 제도권 내의 부모와 아이 관계가 반드시 올바르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기도 하면서 가족 개념의 확장에 대한 고민을 던집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연출: 날카로움과 따뜻함의 공존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다큐멘터리 출신 감독답게 인물과 사건을 관찰자 시점으로 그려내는 연출 방식이 특징입니다. 그는 특정 인물에 대한 판단이나 메시지를 강요하지 않으면서 카메라를 통해 조용히 관찰하는 방식으로 진실을 나타냅니다. 이는 ‘어느 가족’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대부분의 장면은 고정된 카메라로 인물의 일상과 표정을 포착하였고 사건은 드라마틱하지 않고 잔잔하게 전개됩니다. 특히 가족이 함께 식사하는 장면이나 유리를 목욕시키는 장면, 그리고 바닷가에서 손을 잡고 걷는 장면 등은 소소하지만 깊은 울림을 주었고 가족 간의 정서적 유대를 섬세하게 보여줍니다.

고레에다는 감정의 폭발보다 침묵과 시선의 힘을 강조합니다. 영화 후반에서 유리가 택시 안에서 고개를 돌려 마지막으로 바라보는 장면과 시타가 버스 안에서 누군가를 바라보며 눈을 돌리는 장면은 대사 없이도 커다란 감정을 전달합니다. 이러한 절제된 표현 방식은 관객에게 더 큰 여운을 남깁니다.

또한 고레에다는 ‘가족’이라는 개념을 전면에 내세워 사회를 비판합니다. ‘법’이 아닌 ‘사람’의 관점에서 가족을 정의하였고 혈연보다도 더 깊은 관계가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현대 가족의 다양성과 변화하는 인간관계를 반영하는 시도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냅니다.

‘어느 가족’은 결국, 사회와 인간 사이의 거리감, 법과 정의 사이의 간극,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진 감정들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작품입니다. 고레에다의 시선은 날카롭지만 따뜻하고 그 온도의 차이는 이 영화가 주는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입니다. ‘어느 가족’은 단순한 가족 영화가 아닙니다. 이 작품은 일본 사회의 빈곤, 복지의 사각지대, 가족의 해체 등 현실적인 문제를 섬세하게 녹여낸 걸작입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특유의 따뜻하고도 날카로운 시선을 통해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가족이란 무엇인가’, ‘사회는 누구를 보호하는가’라는 질문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됩니다. 지금 이 영화를 다시 본다면 당신의 시선도 달라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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