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날까요? 아니면 디지털 공간 속 ‘나’는 여전히 살아 있을까요? 2018년 방영된 일본 드라마 『dele(디리)』는 죽은 사람의 데이터에 초점을 맞추어 21세기 디지털 시대가 직면한 가장 현실적인 문제, 바로 ‘디지털 사후 관리’라는 화두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dele”는 ‘delete’의 줄임말입니다.
죽은 이가 남긴 사진, 문서, 이메일, 클라우드 파일, SNS 계정은 때론 기억이고 때론 비밀이며 때론 진실입니다. 『dele』는 이런 디지털 유산을 전문적으로 삭제하는 회사를 배경으로 매 화 새로운 죽음을 마주하며 그 흔적 속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그려냅니다. 디지털 흔적은 지워야 할 기록일까요, 아니면 기억해야 할 유산일까요?
디지털 유산과 죽음의 흔적, 드라마 dele가 던지는 묵직한 질문들
『dele』의 설정은 단순하면서도 철학적입니다. 생전에 계약을 맺은 의뢰인이 사망하면 그의 데이터는 자동으로 dele.LIFE에 전달되고 해당 정보는 누군가의 손에 의해 ‘지워지는’ 운명을 맞습니다. 하지만 데이터를 지우기 전에 확인해야만 하는 이유가 생기고, 그 과정을 통해 의뢰인의 생애 마지막이었던 감정과 사연이 밝혀지죠.
드라마는 우리가 남기고 가는 디지털 흔적이 단순한 정보가 아닌 ‘감정의 흔적’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어떤 의뢰인은 가족에게 숨기고 싶은 비밀을 감췄고 또 다른 의뢰인은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던 고통을 기록해 두었습니다. 지워야만 하는 진실과 남겨야 할 진심이 있는 이 드라마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데이터에 의존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합니다.
실제로도 현실에서는 '디지털 유산'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구글, 페이스북, 애플 등 글로벌 플랫폼들도 이용자 사후 계정 처리 정책을 마련 중이라고 합니다. '디지털 유언장'에 대한 관심도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dele』는 이러한 흐름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표현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마다 타카유키×스다 마사키, 깊이 있는 연기 조합이 만든 명작
『dele』를 특별한 드라마로 만든 건 단지 소재의 신선함만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야마다 타카유키와 스다 마사키의 조합은 작품의 감정선을 매우 섬세하게 그려냈습니다. 개인적으로 두 사람의 팬으로써 너무 좋았습니다.
야마다 타카유키는 몸이 불편한 해커이자 삭제 담당자인 ‘카네코 케이’ 역을 맡아 차분하고 이성적인 태도 뒤에 숨겨진 인간적인 내면을 깊이 있게 연기합니다. 말보다는 눈빛과 표정, 호흡을 통해 '죽은 자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은 극의 분위기를 묵직하게 끌고 갑니다. (야마다 타카유키의 연기는 정말 최고였습니다!)
반면 스다 마사키는 활동적이고 감정 표현에 솔직한 ‘쿠로사키 유타’를 맡아 현장을 직접 뛰며 인간관계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두 배우의 정반대인 성격은 극 중에서도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몰입도를 높입니다.
이들의 연기 호흡은 단순한 ‘파트너’를 넘어서 생명과 기록, 죽음과 기억을 다루는 두 가지 시선처럼 느껴집니다. 차가움과 따뜻함, 이성과 감정이 교차하는 장면들은 『dele』의 중심 메시지를 더욱 설득력 있게 전달합니다.
21세기의 죽음, 그리고 우리가 남기는 것들
죽음은 과거에는 육체의 소멸로 끝났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우리의 사진은 클라우드에 대화는 메신저에 일기는 블로그나 SNS에 남습니다. 『dele』는 이 디지털 흔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던지는 드라마입니다. 단순한 삭제 서비스를 그린 작품이 아니라 기억의 무게와 진실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지운다는 것, 그 사람의 마지막을 인정하는 일”이라는 대사는 오늘날 우리가 데이터에 얼마나 많은 삶의 조각들을 남기고 살아가는지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결론: dele는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다
『dele』는 미스터리 장르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삶, 죽음, 기억, 책임, 선택이라는 인간 본질의 키워드들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야마다 타카유키와 스다 마사키가 완성한 이 드라마는 디지털 사회가 반드시 직면해야 할 윤리적 문제를 섬세하고 진중하게 그려낸 수작입니다.
당신이 죽고 난 후 당신의 하드디스크 속에는 무엇이 남아 있을까요? 그리고 그것을 누가, 어떻게 마주하게 될까요? 『dele』는 이 물음을 남기고 당신의 ‘삭제되지 않은 이야기’를 되돌아보게 만듭니다.